전도서의 시작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다소 기이한 말로 시작된다. ‘헛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벨’인데, 그 뜻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쓸모가 없고 가치가 없어지면 밖에 내다 버리는 것을 쓰레기라고 한다. 사도바울도 이와 유사한 단어를 사용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에서, ‘배설물’이라는 다소 과격한 단어로 번역된 헬라어 ‘스퀴바라’는 쓰레기라는 뜻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우리는 쓰레기로 버리는 것조차 돈이 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솔로몬은 당대 최고의 권력과, 재물, 명예를 독차지했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쓰레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쓰레기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평생 바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필자가 오랜 삶의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사역을 결심했을 때, 그동안 20여년의 신앙생활을 통해 얻은 모든 지식과 관행을 전부 쓰레기처럼 버리고 오직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만을 인정할 것을 단호하게 결심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성경적인 방법을 찾아 성경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래서 알아낸 방법이 간절히 찾고, 전심으로 찾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방식이 쉬지 않고 찾는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분을 전심으로, 쉬지 않고 찾아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도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성경의 방식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직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면서 성령의 내주를 간구했다. 하루 종일 불렀다. 아침과 밤 시간의 정해진 기도시간에도 불렀고, 운전을 하면서도 불렀고,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불렀고,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불렀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도 불렀다. 왜냐면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숫자로 계량화시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삶에 적용한다. 새벽기도회에 20분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생각하고, 교회해서 정해놓은 각종 기도회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사람도 자신이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본래의 뜻하고는 거리가 많다. ‘쉬지 않고’라는 헬라어는 ‘아디아레이프토스’인데 ‘끊임없이’라는 뜻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말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수님도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고, 사무엘은 자신이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결심했다. 백부장 고넬료도 항상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의 방문을 받았다고 성경을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말의 뜻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현재 기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가, 아님 그렇지 않은가? 아마 오랫동안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실의에 빠졌거나, 희생적으로 기도한 그간의 기도가 열매가 없어 어깨가 처졌는지 모른다. 아마 당신은 그동안 행한 자신의 기도행위가 문제가 없었다는 전제하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은 교회에서 보아온, 아니 배워온 척도에 맞는 행위였는지 몰라도 성경에서 말한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면 아무런 효험이 없을 것이다. 필자가 20여년의 평신도 시절의 성적표도 그랬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열매가 없었다. 아니, 실패뿐인 인생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신대원을 졸업하고도 세상으로 도로 나갔고, 다시 7년 만에 돌아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면서 자비를 호소하고 사역을 결심했을 때 그동안 배워오고, 알았던 신앙의 관행이 성경적이 아니라면 죄다 쓰레기통에 쳐 넣겠다고 이를 악물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행했다. 춥고 배고프며 외롭고 힘든 사역을 피할 수 없었지만, 오랜 세월을 앞만 보고 그 길을 걸어갔다. 지나온 팍팍하고 고단했던 세월을 반추해보면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로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러나 열매가 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풍성하다 못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다. 필자부부는 성경에서 밝힌 거의 모든 은사를 받았고 탁월한 기도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간의 노력에 대해 성령으로부터 과찬을 듣기도 하였다.
필자가 처음에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뜻을 구체적으로 잘 몰랐지만, 나중에는 성령으로부터 세세하게 지도를 받았다. 그것은 기회가 나는 대로 기도하고, 틈나는 대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 모습은 어떠한가?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 2,30분 기도하면 목에 힘주며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게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잣대에 맞아 떨어지는가? 각종 기도회에 참석하고 기도원에 가서 금식 기도하는 행위가 성경의 기준에 맞는가?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필자가 그간 오랜 기도의 강을 건너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1시간은 기도해야 하다. 그리고 밤에도 자기 전에 1시간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낮 시간에도 틈만 나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한다. 이런 기도모습은 실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기도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결코 할 수 없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야 가능하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시면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 때부터는 기도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담배나 술을 처음에 배울 때는 코도 맵고 입도 쓰지만, 배우고 나면 쾌락에 중독되어 끊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성령이 내주하기 전에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하기 때문에 기도가 힘들지만, 성령이 내주하면 넘치는 기쁨과 잔잔한 평안을 알기에 기도를 중단할 수 없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목적이 기도의 응답이나 문제해결, 은사를 얻기 위해서 하지만,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습관을 들이면 기도하는 시간이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시간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그런 성경적인 기도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필자도 누군가의 개인지도도 없었고 교회에서 배우지도 않았다. 오직 성경에서 캐내어 삶에 적용했다. 그러나 이글을 읽는 당신은 필자가 아주 세세하게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필자의 카페에 들어오면 게시판에 이러한 기도의 방법을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아주 자세하게 실어놓았다. 그리고 누구나 원하면 복사하고 프린트해서 익힐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교육비용도 안 들고 따로 시간을 내어 교육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필자가 했던 상황에 비해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물론 기도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필자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대신 해줄 수 없다. 지금까지 행한 기도행위가 성경적이 아니라면 쓰레기처럼 버려야 한다. 솔로몬은 자신이 가진 엄청난 부와 드높은 명예, 막대한 권력조차 쓰레기처럼 여겼는데, 당신은 그간 해온 것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해 앞으로도 냄새나는 쓰레기통에서 코를 박고 살 거라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기 바란다. 그간의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며, 나중에 천국문 앞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어도 당신이 선택을 잘못한 책임이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으로, 지금 당신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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