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자료

[스크랩] 당신은 속이는 영에게 당하고 산다.

감사하라 2014. 7. 4. 17:13

성경을 읽으면 귀신에 대한 사건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공상과학영화를 보는 듯 읽어 내려간다. 교회에서 늘 듣는 설교에도 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주제는 없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의 중심에는 귀신을 쫒아내는 사건들이 빠지지 않고 나오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네 교회에서는 마치 먼 과거에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을 소개하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원불멸하시는 영이시라면 사탄이나 귀신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섬뜩한 기분이 들지만, 감기 바이러스나 진드기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내듯이,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감기 바이러스나 진드기에 비할 수 없는 파괴력으로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는 그들을 주변에 두고 편안히 잠자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하룻강아지가 호랑이에게 장난을 거는 사건처럼 뜨악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는 이들의 공격방식을 생생하게 다루고 싶다. 당신은 악한 영에게 공격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채는가? 평생 그런 이들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귀신들린 사람을 경험한 이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보통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은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등의 정신분열을 일으킨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실상은 그런 일은 귀신들의 행각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 외에도 귀신들이 머리를 공격하여 타고앉아 정신질환을 일으키거나 육체적인 질환을 일으킨다. 정신질환들은 대부분 완치가 되지 않은 이유나, 적지 않은 고질병이나 불치의 병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도 이들의 공격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은 육체나 정신을 공격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은 육안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지식을 학습 받는다면 그들의 공격을 식별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장 식별하기 어려운 귀신들이 속이는 영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타난 속이는 영들의 행각을 알아보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즉각 이에 대해 항변한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 죽는 끔찍한 사건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즉각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고 외친다. 순간적으로 베드로의 생각을 속이고 들어와 그의 생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은 화가 나도 해가 지도록 화를 품지 말며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한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화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악령이 생각 속에 속이고 들어와 증폭시키지만, 이를 깨닫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작은 화가 큰 싸움을 일으키고 이혼을 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들은 이 속이는 영의 정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성령에는 속인다는 한자어로 미혹하는 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우리는 무협지의 등장인물쯤으로 여기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속이는 영의 일반적인 공격유형은 성경에서 소개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미움, 시기, 질투, 탐욕, 방탕, 음란, 교만, 싸움, 분열, 불순종, 술 취함, 마음 산란함, 교만 등 이들의 공격유형은 죄를 짓게 만드는 모든 유형을 총망라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공격에 속아 넘어간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성도라면 이들의 계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계략을 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귀신들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므로 이러한 사람에게 이미 읽힌 계략을 다시 사용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또 다른 카드를 내미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들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며 영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미혹하는가? 그들이 가장 잘하는 능력을 미혹한다. 말씀에 해박한 자는 말씀으로 미혹하고, 방언을 소망하는 자는 방언으로 미혹하고, 예언을 소원하는 영음으로 미혹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의 속내에 자리 잡은 교만을 일으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에 분별하여야 한다. 가장 많이 속이는 것들이 바로 말씀을 통해서이다. 시험하는 사탄이 예수님을 찾아 시험한 것도 말씀을 통해서이다. 말씀으로 들이대지만 속내는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하는 속내이다. 이처럼 말씀을 앞세우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흘리신 보혈의 의미를 전하기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의를 드러내는 자들이 적지 않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이러한 미혹의 영에 속아서 살고 있다. 그들은 해박한 성경지식과 신앙의식에 익숙하지만,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대접받기 좋아하고 섬김을 받으려 한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기 좋아하며 자기 자랑을 하는 일을 즐긴다. 이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자들은 비난당하고 정죄당하기 일쑤이다. 그들에게는 사랑과 용서보다 판단과 억압 그리고 정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가슴에는 십자가의 보혈이 없기에 예수님의 희생을 닮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속이는 영이 그들 머리를 타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교회의 지도자이기에 그들이 지도하는 많은 양들이 귀신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주리고 목말라하며 방황하고 있다.

 

그렇다면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양들에게 주로 속이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은사나 신비현상을 통하여 속인다. 은사 중에서는 방언과 영음으로 들려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분별력이 없다면 이들에게 십중팔구 속아 넘어가게 된다. 그들은 방언을 습관적으로 하게 하여 성령이 내주하는 깊은 기도의 강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방언을 드러내고 자랑하기를 좋아하게 만든다. 교만을 부추겨 방언을 은근히 과시하게 하여 우월한 종교심을 드러내게 만들기도 한다. 방언을 오래해도 성려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 자들이 그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영음으로 들려주는 방법도 속기 적절한 계략이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어 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위협하며 겁을 주는 자들은 대부분 악한 영에게 속는 자들이다. 그들 중에 목회자가 많고 교회의 중직자도 적지 않다. 갑자기 이들이 영음을 듣는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하며 교회가 뒤숭숭해지고 교인들이 혼란스러워진다. 성령이 주는 영음을 듣는 자는 극히 드물며, 그들은 자신의 은사를 잘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겁을 주고 자랑하기보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에게 덕을 세우게 되며 풍성한 열매가 맺힌다. 이처럼 남들이 잘 없는 방언이나 영음을 듣게 되면 교만해져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자들은 미혹하는 영에게 속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신비현상으로 속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성령 춤, 성령 불, 방언찬양, 금가루, 금이빨, 뒤로 넘어지는 현상 등 신비현상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들은 죄다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의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적과 기적에 속아 넘어가 영혼과 생명을 사냥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속이는 영은 사람들의 기질, 좋아하는 것, 취약한 것, 신앙의 유무나 신앙의 정도에 맞추어 가장 효과적인 분야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사람들은 이 공격이 귀신들의 공격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 병들고 생명이 죽어나가며, 교회가 분열되며, 교인들이 잠자고 있으며, 가정이 파괴되고, 탐욕과 방탕에 빠져 일중독자가 되고 알코올 중독을 비롯한 중독자가 되고, 정신질환자가 되고, 고질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거나 자살하여 세상을 떠나 지옥으로 가게 되는 운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왜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불행하고 고통스러운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귀신들은 사람들을 완벽하게 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혹의 영들의 공격을 방지하고 그들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성령의 도우심밖에 없다. 완벽하게 속이는 그들을 알아내고 쫒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하시는 영적 습관을 들이는 일에 목숨을 걸다시피 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안일한 신앙생활에 안주하고 세상의 탐욕과 방탕에 빠져 하나님을 잊고 사는 불쌍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출처 :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쉰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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